더치페이

 그 동안 더치페이를 불편하게 여겼던 내가 강신주의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을 읽고 그 불편했던 마음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니가 많이 버니까 니가 내라, 많이 버는 놈이 더 많이 내면 되지, 이번엔 내가 낼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 왔었는데 요즘은 어딜가나 무조건 더치페이다. 요즘 MZ세대들은 특히나. 뭐 나를 포함한 그 이전 세대들도 요즘은 거의 더치페이다. 하물며 내가 속한 올드멤버 뿐인 오래된 등산 동호회도 일찌감치 모든 뒷풀이의 회비는 더치페이로 해결하고 있다.

더치페이가 우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옳을까? 인문학적 사유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라. 어느 순간 갑자기 친구가 돈이 없을 수 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나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파스타를 먹자고 전화를 한다. 파스타도 먹고, 맥주도 한 잔 하고,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시는 일정이다. 이 경우 친구는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다. 선약이 있다고, 혹은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집에 가봐야 한다고, 아니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 것이다. 나를 만나고 싶지만 더치페이를 할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돈이 없으면 나 역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 수 있다.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되었는데 집안의 가장인 나로서는 친구와의 만남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권고한다. 나나 친구, 둘 중 한 명이 먼저 커피값을 계산하라고. 항상 너의 커피값을 내가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말이다.

* 강신주의 허락도 없이 일부를 전재해서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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