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화탄

어릴 적 우리 집은 아궁이(아공이 아님)에 연탄을 때서 난방을 했었다. 연탄을 갈 때마다 할머니로부터 구멍을 잘 맞춰야 한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연탄 구멍만 아니라 모든 구멍은 잘 맞춘다. 연탄의 구멍을 잘 맞추지 않으면 아래 연탄에서 위 연탄으로 열이 잘 전달되지 않아 자칫 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짓달이 얼마 안남은 이맘때쯤 부터 한 밤중에 벌벌 떨며 잠이 깨면 십중팔구 연탄불이 꺼져 있었고 할머니의 등짝스매싱을 피할 수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꺼진 연탄불을 되살려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게 번개탄이었다.


착화탄, 오히려 번개탄이라는 상표명이 더 익숙해서 고유명사화한, 성냥불만 갖다 대면 그냥 불이 붙는 숯의 일종이다. 이름에 탄이란 말이 들어가서 석탄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성분은 거의 숯이다. 어쩐지 가볍다 했어.

최근 김완의 <죽은자의 집청소>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과는 사뭇 다른 내용의 이야기다. 저자는 특수청소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그 특수청소업이란 게 기이하게도 죽은 사람, 더 정확히 말하면 혼자 살다가 고독사한 사람들의 집을 청소하는 것이다. 대개 자살한 사람들이다. 가족들마저 가까이 오기를 꺼리는 그 일을 하면서 다양한 이들의 죽음의 현장을 목도하고 느끼고 깨달은 바를 수필의 형식을 빌어 책을 냈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 몇개의 착화탄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던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에피소드 제목도 웃기다. '나쁜 시키'. 새끼도 아니고 시키다. 너 네 음절에 저자 뿐만 아니라 나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내 마음도 모르면서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그들의 마음을 그 누군가 한 명이라도 알아주었다면... 

저자는 죽은 이들의 현장 곳곳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흔적들이 보인다고 했다. 액자 속 사진, 편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 등등. 저자는 이 일을 하며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리고 안타까워 한다. 왜 그들이 가고 난 후 그 자리를 청소해야 하는지. 글을 읽다 보면 여러 부분에 뭍어나지만 나중에,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자는 자살 예방 관련 사업도 할 것 같다.

 내게 익숙해진 일이라고 누구나 할 수 있길 기대해선 안 된다.

이 책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 대목이다. 지금 하는 일과 관련하여 다소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상황이었는데 김완님의 저 글귀로 마음속에 엉겨 있던 응어리가 어느 정도 풀렸다. 그래, 내가 너무 그들에게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닐까?

빈궁해진 자에게는 가족조차 연락을 끊나보다.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조촐하게 살되 빈궁해지진 말자. 다소 느슨해지고 시야가 좁아지려는 때에 이런 책을 읽게 해 주신 김완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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