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랄 뿐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할 때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유부단하단 소리를 아주(!) 많이 듣고 자랐다. 소신이 없거나 용기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난 그 말이 싫었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 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오다 지금은 라이프가드로 일을 하고 있다. 남들은 한 우물을 깊게 파라는데 난 그게 잘 안된다. 인생은 한 우물만 파기엔 너무 짧다. 언젠가 부랄친구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보고 이런 말을 했다. 

다양한 경험도 좋지만 자꾸 그렇게 직업을 바꾸면 생활이 나아지지 않지 않냐, 이제 너도 한 곳에 정착을 해라.

친구의 생활이 나아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은 가지만 나의 생활이 나아진다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나는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집이 있고, 폐차 직전이지만 굴러는 가는 자동차가 있고, 결혼도 했고 자랑스럽게 커가는 아들도 둘이나 두었다. 생활이 얼마나 더 나아져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 끝나면 서핑도 하고 올레길도 걷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다만 이 일이 제발 마지막 직업이 되길 바랄 뿐이다. 늘 그랬지만.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말주변이 없으면 서론이 길다지?

한 때 라이프가드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수심확인도 하지 않고 무작정 저수지에 빠진 드론을 꺼내러 들어간 적도 있고 내가 가드를 보던 철인3종경기에서 선수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를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참고인 조사로 끝났지만 내가 인명 구조 활동을 하고 있던 행사에서 사망 사고가 난 그 충격적인 사실이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렇게 우유부단했던 나도 이제는 인명 구조를 하는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는다. 나는 라이프가드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라이프가드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 남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렸는데 그냥 설렁설렁 근무해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니 남들 눈을 피해 농땡이 부리고 싶지는 않다. 내가 라이프가드 근무를 서는 동안 사고가 나지 않길 바란다. 물론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방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사고가 어디 그런가? 어쩔 수 없는 사고는 나기 마련이다. 만약 사고가 나더라도 신속한 응급 처치로 인명을 구하는 것이 내 임무다. 만에 하나라도 사고 발생시 그 자리에 내가 없다면 그 임무를 다 할 수 없다. 수영에 있어서 성인이라고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아니다. 성인도 데크에서 미끄러져 뒤통수 깨지고 물속에서 장난치다 물먹고 그러다 패닉오고 심정지 온다. 장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쥐나서 허우적거리는 건 예사도 아니다.



출처 : 연령별 물놀이 안전사고 사상자(11~15년), 국민안전처 2016 통계연보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냥 내가 근무하는 시간에,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더 이상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

  1. 생활이 나아진다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부분은 ...본인한테 좋은 생각이지 엄밀히 말하면 가족에게 좋은 생각은 아니죠. 자기만족인건지요.가족은 ...좋은 차를 타고 싶고 더 좋은 걸 하고 싶고...그러려면 가장의 희생이 필요한건 사실이니...
    좋은 일을 하는 건 확실하니 이상적인 삶을 사는 건 맞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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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일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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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장애인 한강 건너기 이런건 취지가 좋은데 철인 3종 경기 이런건 자주 하는건 주최측에서 생각 좀 해봐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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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철인3종 선수, 협회, 관계자가 포함된 주최측과 방송, 후원기업 등등 여러 가지 경제논리가 얽혀 있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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